5. 인니 어디 있니?

인도네시아 무상급식, 한국이 이미 한 번 겪었던 고민

다음장 2026. 7. 4. 15:32

 

학교에 가지 않는 날, 더 배고픈 아이들은 없을까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무상급식 정책을 둘러싸고 또 하나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주말과 공휴일에는 급식을 중단하는 방안입니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는 '예산을 생각하면 현실적인 결정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수천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급식 사업인 만큼, 국가 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 다른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배고픈 아이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오래전 비슷한 고민을 했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쉬는데, 아이들의 배고픔은 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는 학교급식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제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급식은 일부 학교에서만 운영되었고, 무상급식 역시 보편적인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IMF)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실직과 가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결식아동'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학교에 가는 날에는 점심을 먹을 수 있었지만,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어떤 아이들에게 학교급식은 단순한 점심 한 끼가 아니라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식사였습니다.

 

학교 문이 닫히는 순간, 아이들의 식사도 함께 멈추는 현실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복지는 학교 안에서 끝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학교급식을 확대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이 배고픈 시간은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에 더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조금씩 정책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학교가 쉬는 날에도 아이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안전망을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학교 밖으로 확장된 급식

현재 우리나라는 지방자치단체와 보건복지부가 함께 결식 우려 아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동급식 지원사업입니다.

지역에 따라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 아동급식카드
  • 편의점 이용
  • 일반 식당 이용
  • 도시락 배달
  • 지역아동센터 급식

등 여러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급식카드는 복지 정책의 방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학교를 계속 열어두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스스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학교 중심의 복지가 지역사회 중심의 복지로 확장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도 같은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주말 급식을 축소하거나 운영 방식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며 자연스럽게 한국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재정은 분명 현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배고픔도 현실입니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지만,

주말에는 부모가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방학이 되면 학교 급식이 사라지고,

오히려 영양 공백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도 앞으로는 단순히 학교급식만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고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문제, 다른 해답

물론 인도네시아가 한국과 똑같은 제도를 도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인도네시아는 한국보다 더 강한 공동체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와 모스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봉사활동,

종교단체의 무료급식,

마을 공동체의 상호부조 문화는 한국보다 훨씬 활발한 지역도 많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자산을 활용한다면 인도네시아만의 방식으로 학교 밖 영양 지원 체계를 만들어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형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식사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복지는 '얼마나'가 아니라 '언제'입니다.

복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지원 금액이나 예산 규모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언제 도움이 필요한가입니다.

 

학교에서 점심을 먹는 평일보다,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긴 방학 동안 더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복지는 많은 사람에게 똑같이 지원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순간을 찾아 빈틈을 메워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한국이 결식아동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배운 것도 바로 이 점이었습니다.


정책은 다른 나라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제가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것은 이 나라가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이었습니다.

 

경제도 빠르게 성장하고,

인프라도 계속 확충되고,

새로운 정책도 과감하게 시도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시행착오는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가 먼저 걸어간 길을 살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 역시 처음부터 지금의 복지제도를 갖추었던 것은 아닙니다.

결식아동이라는 사회문제를 겪었고,

학교급식 확대를 경험했으며,

방학 중 급식 공백을 고민했고,

결국 학교 밖까지 지원 체계를 넓혀 왔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지금 인도네시아가 충분히 참고할 만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생각을 더하며

한 나라의 정책은 그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가 이미 경험했던 시행착오와 성공 사례를 배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인도네시아의 무상급식 정책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한 끼는 아이들의 오늘을 지켜줍니다.

하지만 학교 밖에서 이어지는 작은 관심과 지원은 아이들의 내일을 지켜줍니다.

 

어쩌면 복지의 진짜 목적은 '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배고픔 때문에 미래를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도네시아가 지금 고민하는 문제는 결국 우리도 한 번 고민했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의 과정은 앞으로 인도네시아가 더 나은 제도를 만들어 가는 데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