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기를 구울 줄 모르는 세대가 된 이유
인도네시아에 살던 시절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인 국제학교 학생들을 단체로 데리고 한국식 고깃집에 갔는데, 불판 위에 고기가 올라가도 움직이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는 웃으며 말합니다.
"요즘 애들은 진짜 아무것도 안 하네."
또 누군가는 혀를 차며 이야기합니다.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저러냐."
과연 그럴까요?
저는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버릇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고기를 구워본 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고기를 먹는 문화가 한국과 조금 다릅니다.
한국에서는 삼겹살집에 가면 손님이 직접 고기를 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직원이 구워주는 식당도 많아졌지만, 원래는 집게를 들고 뒤집고 자르고 나누는 것이 식사의 일부였습니다.
반면 인도네시아에서는 연기와 안전 문제 때문에 직원들이 별도 공간에서 고기를 구워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는 가사도우미가 식사 준비를 담당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아이들은 밥을 먹지만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할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에서 자란 아이가 한국 고깃집에 와서 불판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인도네시아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도 어느새 비슷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배달 앱이 음식을 가져다주고, 세탁기는 빨래를 하고, 건조기는 옷을 말리고, 로봇청소기는 바닥을 청소합니다.
고깃집에 가도 직원이 고기를 구워줍니다.
예전에는 부모를 따라 장을 보고, 집안일을 돕고, 고기를 굽고, 설거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혔던 생활 기술들이 점점 경험의 영역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서비스는 늘어났지만 경험은 줄어든 것입니다.
가끔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애들은 시키는 일만 한다."
"눈치가 없다."
"주도성이 부족하다."
하지만 정작 그들을 그렇게 키운 것도 기성세대였습니다.
공부만 하라고 했습니다.
집안일은 부모가 대신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었습니다.
학원과 과외로 하루가 채워진 아이들에게 고기를 굽는 법이나 설거지를 하는 법을 가르칠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사회에 나오자 갑자기 눈치와 생활력을 요구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낸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저는 회식 자리에서 막내가 고기를 구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문화는 사라져도 괜찮습니다.
다만 고기를 굽는 법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고기를 잘 굽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과정에 누군가의 노동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직접 불판 앞에 서본 사람은 식당 직원의 수고를 이해합니다.
직접 청소를 해본 사람은 청소 노동자의 가치를 압니다.
직접 밥을 해본 사람은 한 끼 식사의 무게를 압니다.
생활 기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을 이해하는 경험이기도 합니다.
불판 앞에서 멈춰 선 아이들을 보며 누군가는 버릇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저 아이들은 왜 고기를 구워볼 기회조차 없었을까?"
어쩌면 세대 차이라는 것은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차이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경험의 부족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대신해 주며 살아온 우리 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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